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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숙면을 위한 작은 노력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가 수면이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수면의 중요성을 쉽게 간과하곤 한다. 하루하루 업무와 일상에 시달리다 보면 기억력과 집중력이 저하되고, 결국 생산성까지 떨어진다. 그제야 비로소 수면 부족의 영향을 실감하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건강한 성인은 하루 7~8시간의 수면을 취해야 뇌 기능, 호르몬 분비, 면역 체계, 신진대사가 정상적으로 조절된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점점 늘어난다.   스마트폰, TV, 컴퓨터 같은 전자기기의 사용을 자제하면 수면의 질을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신체적 변화나 건강상의 문제로 인한 수면 장애는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얼마 전, 미주중앙일보 오피니언 지면에서 ‘기저귀 떼는 날을 기다리며’ 라는 글을 읽었다. 기고자는 “밤에 다섯 번, 여섯 번 화장실에 가느라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사실 말을 하지 않을 뿐, 많은 시니어들이 야간뇨(夜間尿)로 인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노화로 인해 방광의 용량이 줄어들고, 당뇨병, 전립선 문제, 요로 감염 등이 야간뇨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숙면을 위한 해결책은 없을까? 각자 자신만의 방법을 찾고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기고문의 필자는 자신이 고안한 최면 기법을 소개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팔다리를 가볍게 스트레칭하며 단전호흡을 한 뒤, 성경 구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를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반복하면 어느새 잠이 든다고 한다.   나 역시 비슷한 방법을 쓴다. 한밤중 잠이 깼을 때 다시 잠들기 위해 찬송가 ‘죄 짐 맡은 우리 구주’를 1절부터 3절까지 부른다. 학창 시절부터 익숙한 찬송가이지만, 아직도 가사를 완벽히 외우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억력 테스트도 겸해 제대로 암기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수십 번 연습한 끝에 드디어 3절까지 외울 수 있었다. 마치 작은 승리를 거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자 다시 헷갈리기 시작했다. 1절의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와 2절의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3절의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가 뒤섞이며 가사를 부를 때 한 박자씩 늦어지기 일쑤였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나름의 효과가 있다. 가사를 맞게 불러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어 있다.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사실 가사를 완벽히 외우지 못해도 상관없다. 조금 틀리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숙면을 취하는 것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 밤 푹 잘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숙면을 돕기 위해서는 생활 습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잠들기 두 시간 전에는 수분 섭취를 줄여 야간뇨를 예방하는 것이 좋다. 또한, 규칙적인 수면 습관, 균형 잡힌 식습관, 적절한 운동, 스트레스 관리 등이 함께 이루어진다면 숙면의 질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결국, 숙면은 우리 몸과 마음을 지켜주는 기본적인 요소다. 작은 노력만으로도 더 나은 수면을 취할 수 있다면, 오늘부터라도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백인호 / 수필가열린광장 숙면 노력 근심 걱정 걱정 근심 기억력 테스트

2025-02-13

[아름다운 우리말] 삶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

살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수많은 일 속에 갇혀 있습니다. 머릿속에는 어제 일과 오늘 일, 심지어 다가오지 않은 내일 일까지 가득합니다. 삶이 괴롭다는 말은 머릿속에 괴로운 일만 가득 담고 살기에 생긴 말일 겁니다. 인간의 머리는 제한적이어서 한 가지를 생각하면 동시에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괴로운 생각을 하면 즐거울 수 없습니다. 울던 아이가 금방 깔깔대고 웃는 것도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만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두 가지 감정과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참 다행입니다.   어제의 괴로운 기억을 되살려 곱씹고 살아가는데 삶이 즐거울 리가 없겠지요? 지금 나에게 닥친 일 중에서 힘든 일만 골라 생각하고 있는데 현재가 기쁠 리 없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 그럼에도 오고 있는 내일을 걱정, 근심, 초조로 채우고 있는데 삶에 대해 설렘이란 있을 수 없겠죠. 사는 게 괴로움이라는 말은 어쩌면 내 머리와 감정의 편향성을 보여줍니다. 한쪽으로 생각이 가득 차 있는 겁니다. 세상을 사는 게 참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괴로움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모두 제 이야기일 겁니다. 굳이 안 좋은 쪽을 바라보고, 그쪽에 온 마음을 빼앗길 이유가 없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리되고 맙니다. 그런 자신을 보며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내보이기도 하고, 허탈한 감정을 속으로 쌓기도 합니다. 어쩌면 제 괴로움과 성장이라는 두 갈래 길은 고통에 대한 집중에서 비롯되는 듯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일어날 뭔가를 두려워하고 걱정합니다. 예를 들면 죽음이 그렇습니다. 반드시 누군가에게나 죽음의 시간은 옵니다. 영생을 이야기한 수많은 이도 일단은 모두 죽음의 시간을 맞았습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 그러므로 나도 죽는다는 논리는 심한 공포를 줍니다. 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헤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생각만으로도 슬픕니다. 세상이 온통 괴로움의 바다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보면 금세 걱정의 바다로 흘러가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생각을 바꿔야 하는 순간입니다. 세상에는 꼭 일어나는 일이 있는가 하면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말장난 같은 이야기지만 일어나는 일과 일어나지 않는 일은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어느 누구나 죽는 게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라면, 죽지 않는 일은 절대로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살면서 누구나 아프기에 아프지 않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이나 미워하는 이와 만나야 하는 고통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일은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내 괴로움의 근원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 달리 말하면 내가 피할 수 없는 일에 꽂혀있다는 겁니다. 그 깊숙이 박힌 칼을 바라보지 않는 이상, 괴로움은 그대로 남아있는 겁니다. 무리하게 괴로움의 칼을 빼내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은 다시 그 괴로움을 향합니다.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어디를 바라봐야 할까요? 되돌아가고픈 기억은 나를 괴로움에서 그리움으로 옮겨줍니다. 내가 의식조차 못 한 상태에서 나를 순간 이동시킵니다. 내가 가고픈 곳에 대한 바람은 나를 괴로움에서 그리움으로 옮겨줍니다. 내 의식의 한 점은 금방 다른 점으로 옮아가는 겁니다.     즐거움이 있기에 괴로움도 있는 거라 말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괴로움이 있기에 즐거움도 있는 겁니다. 생각을 괴로움에서 즐거움으로 옮기면 세상이 밝아집니다. 살면서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은 괴로움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내 마음의 점을 잘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점을 엷은 미소 속으로 옮기는 수정이 필요합니다. 하루 종일 나를 괴롭혔던 생각의 점이 이 글을 쓰는 동안, 글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괴로움을 잊고 글을 쓰고 있었네요. 좋아하는 일, 기쁜 생각을 하면 괴로움의 크기는 줄어듭니다.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말로 생각의 점을 옮겨보세요.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이상 괴로움 걱정 근심 모두 죽음

202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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